
2025/3/13
모호한 영역에서 새로운 브랜드 채널 만들기
스타트업에 있다 보면 KPI가 아직 분명하지 않은 영역에서도 리스크를 감수하며 도전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아직 정립되지 않은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있거나 새로운 채널의 도입이 절실할 때, 나는 종종 디자이너로서 시각적인 판을 깔고 새 흐름을 만드는 역할을 맡아왔다. 조직의 공백을 지적하는 일은 쉽다. 하지만 당장 없어도 불편하지 않던 브랜딩의 빈틈을 찾아내고 그것을 수면 위로 올리는 일은 훨씬 더 어렵다.
전적 사이트에서 게이머의 세계로, 6K에서 17K로
오피지지에서 브랜딩 팀 리드를 맡고 있을 때, 회사는 ‘리그오브레전드 전적 서비스’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 더 넓은 ‘게임 문화의 공간’으로 프레임을 전환하려 하고 있었다. 미션은 분명했다. 전적 데이터 중심 이미지를 넘어, 게이머가 공감하고 머무는 브랜드로 확장하는 것이었다.
브랜딩 팀은 이미 리브랜딩, Gamers Universe 메시지, 그리고 게임 플레이 상황을 유쾌하게 풀어낸 캐릭터 IP 같은 실험을 통해 그 방향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다만 그 메시지를 생활 언어로 전달할 채널이 부족했다.
브랜딩 팀은 지원 조직이었기 때문에, 명확한 니즈가 생기기 전에는 선제적으로 개선을 밀어붙이기 쉽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인스타그램이 브랜드 보이스를 더 직접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채널이 될 수 있다고 봤다. 기능 업데이트 안내에 머무르기보다, 이 계정을 게임 유머와 뉴스 매거진으로 재구성하자고 제안했다. 초기에는 방향성을 먼저 증명하고 싶어서 기획과 제작을 직접 맡았다.

운영을 통해 가능성 증명하기
포맷은 두 가지 축으로 단순화했다. 하나는 게이머 공감형 유머 콘텐츠였고, 다른 하나는 빠르게 요약하고 큐레이션하는 게임 뉴스였다. 보이스도 채널에 맞게 더 날카롭게 다듬었다. 오피지지가 관찰자처럼 보이기보다, 감각 있고 센스 있는 플레이어처럼 느껴지도록 하고 싶었다.
당시 계정 팔로워는 약 6천 명 수준이었고, 나는 우선 1만 명을 첫 번째 증명 지점으로 설정했다. 공식 계정이라면 그 정도 규모를 넘어섰을 때 신뢰와 참여를 더 쉽게 만들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초반에는 업로드 볼륨이 인터랙션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가설 아래 하루 3~4개의 콘텐츠를 올리며 밀도 있게 운영했다.
특히 유머 콘텐츠의 반응이 좋았고, 몇 개의 게시물이 알고리즘을 타면서 계정은 빠르게 1만 팔로워를 돌파했다. 이후 세 달 만에 1만6천 명 수준까지 성장했고, 업로드 빈도를 낮춘 뒤에도 최종적으로 1만7천 명대를 기록했다. 광고 문의도 들어오기 시작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성공적인 브랜딩 실험처럼 보였고, 실제로도 많은 면에서 그랬다. 하지만 더 중요했던 것은, 이 채널이 광고처럼 보이지 않으면서도 브랜드의 센스와 태도를 자연스럽게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는 점이었다.

지표가 가진 역설: Follower은 Fan이 아니다
동시에 이 프로젝트는 지표가 어디까지 유효하고 어디서부터 오해를 만들기 시작하는지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도달과 팔로워 증가는 분명 가능성을 입증하는 데 도움이 되었지만, 그것이 곧바로 구매력 있는 팬이나 사업 성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이미지를 소비하고 콘텐츠에 반응하는 사람과 실제로 상품을 구매하거나 구독까지 이어지는 사람은 다를 수밖에 없다. IP 기반 굿즈와 이모티콘을 인스타그램 팔로워에게 홍보했을 때도, 그 규모가 곧바로 매출로 전환되지는 않았다. 이 경험을 통해 지표는 진척을 설명하는 데에는 강력하지만, 그 자체가 목적을 대신하기 시작하면 위험하다는 걸 다시 확인했다.
숫자가 오른다고 해서 브랜딩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결국 내게 가장 가치 있게 남은 것은 팔로워 수가 아니라 우리가 만든 체계였다. 에디토리얼 원칙, 운영 리듬, 협업 방식, 그리고 디자이너가 새로운 장을 열고 방향성을 증명한 뒤 팀이 계속 달릴 수 있는 레일을 남길 수 있다는 확신이 더 오래 남았다.

마치며
돌아보면 내가 인스타그램을 붙잡았던 이유는 단순했다. 브랜드의 방향성을 내부에서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바깥에서 실제로 시험해볼 수 있는 장을 만들고 싶었다. 작은 승리를 쌓아 더 강한 논리로 만들고, 내가 떠난 뒤에도 팀이 이어갈 수 있는 무언가를 남기고 싶었다. 지금도 스타트업의 브랜드 일을 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다.
브랜드는 한 번의 문장이나 한 번의 캠페인으로 증명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도 반복해서 어떻게 행동하느냐로 증명된다. 매출과 지표가 자연스럽게 대화의 중심이 되는 빠른 스타트업 환경에서는 그런 일관성의 가치를 설득하는 일이 쉽지 않을 때도 있다. 그래도 나는 그래서 더더욱 브랜드의 행동을 눈에 보이게 만드는 채널과 시스템, 그리고 경험을 계속 설계해야 한다고 믿는다. 숫자는 지나간다. 결국 남는 것은 다음 움직임을 더 분명하게 만들 수 있는 구조다.